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(문단 편집) == 진실화해위 심사 및 법원 재심확정 == 잊혀질 줄 알았던 사건은 2000년대에야 빛을 보았다. 2002년 4월 28일 MBC <[[이제는 말할 수 있다]]> '91년 5월, 죽음의 배후'[* 2003년 제1회 언론인권상 특별상 수상작.] 편을 통해 그간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해 오던 김기설의 부친이 문제의 유서가 김기설의 자필 유서였다고 증언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. 해당 프로에서 제작진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, 일본의 사설감정인에게 의뢰한 결과 필체가 김기설의 것이라는 소견을 이끌어냈다.[[http://www.pdjournal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3970|#]] 2004년 11월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고 2005년 각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'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위원회'가 결성되어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. 2007년 [[진실·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]]에서는 이 사건을 재조명해 국과수에 필적감정을 재의뢰했다. 국과수는 이 사건을 맡아 5명의 감정인으로 재감정했고 동년 11월 이들은 필체가 다르다는 의견을 내어 1991년 당시의 감정을 뒤집었으며 진실화해위에 출석한 1991년의 김형영 감정인도 "감정인에 따라 판정이 다를 수 있다"고 말하면서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간접 시인했다. 진실화해위에서는 강기훈이 무죄를 주장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고 2009년 서울고법 형사10부(부장 이강원)는 강씨가 낸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. [[서울고등검찰청|서울고검]]은 다음날 즉각 항고했으나 2012년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서 이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